게이머들로부터 돈을 받고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이하 LoL)의 랭크(게임 내 순위)를 대신 올려주는 일명 ‘대리랭크’ 서비스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종래에도 돈을 받고 캐릭터의 레벨을 올려주거나, 플레이어의 랭킹을 올려주는 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서비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이나 동유럽처럼 인건비가 낮은 국가를 중심으로 제공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랭크 서비스가 새삼스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 LoL의 인기가 매우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래에는 관련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비교적 음성적으로 고객을 유치하던 대리랭크 서비스가 이번에는 “전직 프로게이머와 챌린저 유저들이 모여있다”는 광고와 함께 공공연하게 고객을 모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리랭크 서비스와 관련해서 게이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과연 대리랭크 서비스가 불법인지 여부일 것입니다. 만약, 대리랭크 서비스가 불법이라면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대리랭크 서비스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형법 제314조 제1항에 규정된 업무방해죄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죄입니다. 대리랭크를 맡기면 대리인이 플레이하는 동안은 게임을 잘하는 플레이어가 낮은 랭크로 게임을 하게 되고, 대리가 종료하면 게임을 못하는 플레이어가 높은 랭크로 게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실력과 랭크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리랭크 업체는 고객들로부터 돈을 받고 실력에 맞지 않는 랭크를 갖도록 해줌으로써 라이엇 게임즈가 실력에 맞게 게이머들을 배치하는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게임을 해야 재미가 극대화되는데, 랭크에 따라 배치를 해도 경기력에 큰 차이가 난다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이엇 게임즈의 업무는 랭크가 비슷한 게이머들을 매칭시켜 주는 것이지, 플레이어가 랭크에 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업무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랭크는 실력을 추정하도록 해주는 지표에 불과합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친구나 가족이 랭크를 올려주거나, 이미 LoL의 고수인 플레이어가 세컨드 아이디를 만든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양자 모두 실력과 랭크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대리랭크 서비스의 경우와 차이가 없습니다. 랭크와 실력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처벌해야 한다면 이와 같은 경우도 형사처벌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긴 설명을 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약관에서 대리랭크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이용을 정지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 약관 내용에 따라 대리랭크를 맡긴 게이머의 계정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경쟁이 치열한 나라입니다. 어딜 가나 성적과 등수로 우열을 결정합니다. 학교에서는 성적과 석차에 따라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서는 학점과 영어성적 등에 따라 회사에 취업합니다. 취업 이후에도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이 결정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을 겪어야하고, 오직 승자에게만 권력과 부, 명예를 주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살아가다보니, 편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랭크를, 그리고 레벨을 올리고 싶은 충동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도 이번 기회에 랭크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LoL의 랭크 시스템은 일단 랭크가 올라가면 다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 시즌 내내 대리랭크의 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적 기록에 맞추어 랭크에 변동을 준다면 돈을 주고 대리랭크를 맡길 동기는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높은 랭크를 유지하려면 계속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대리랭크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정서는 학력을 위조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에 맞지 않는 스펙을 허위로 유지하려고 할 때 그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는 신정아 사건 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랭크를 올리면, 잠깐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랭크에 맞지 않는 실력은 주변 사람들의 더 큰 비난을 가져올 뿐입니다.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내가 강하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데 있는 게 아닐까요.

모쪼록, 게이머들이 게임의 참된 재미를 자각하고, 라이엇 게임즈도 고객의 기대에 맞추어 시스템을 개선하여, LoL이 보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게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제라드76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2005년 10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포장에는 반드시 “18”이라고 표시하도록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합니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법을 제정하면서 폭력적인 비디오게임들은 미성년자가 반사회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이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미성년자들도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심리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에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등은 위 법률이 위헌이라며 소를 제기하였고, 대한민국 국회가 강제적 셧다운제를 통과시킨 2011년 4월로부터 약 2달 뒤인 2011년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위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 (Brown v. EMA/ESA, No. 08-1448)을 내립니다.

비록, 위 법률은 청소년보호법상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전혀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본 판결을 통해 비디오 게임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판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디오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만약, 게임이 애당초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서 보호되는지 논란이 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대체로 정치적 표현의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미네르바, PD수첩, 쥐 그림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은 원래 오락적 성격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지 문제가 된 것인데, 연방대법원은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면서, 오락과 정치를 구별하기 어렵고, 그러한 시도 자체도 위험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매체와는 달리 폭력적인 게임만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게임은 다른 매체와 달리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비디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화면을 통해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참여를 결정하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호작용이 다른 매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만의 특성이라면, 폭력적인 게임에 대한 차별은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게임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판시하면서, 특히 1969년에 출간된 [당신의 모험: 사탕수수섬(The Adventure of You: Sugar cane Island)]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소설들은 이후 게임북(gamebook)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게임북에서는 독자들의 결정에 따라 소설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보기에 모든 매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호작용적이고, 모든 매체가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하여 게임만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연방대법원이 폭력적인 게임과 현실세계에서의 폭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주가 제시한 앤더슨 박사(Dr. Craig Anderson)의 연구 결과 및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대한 노출이 아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몇몇 심리학자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연구는 인과관계(causation)의 증거가 아닌 상관관계(correlation)에 기초하고 있으며, 방법론에 중대하고, 인정된(admitted) 흠결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추가로, 연방대법원은 설사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아이들을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앤더슨 박사의 연구결과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영향들은 매우 미미하며, 다른 미디어로부터 받는 영향들과 구별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모든 사회는 서로 다른 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국가의 법제도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하고 있고,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라 정립된 것이라면, 다른 나라의 제도와 상이하다고 하여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한 규제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면, 과연 그러한 규제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기초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으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 판결은 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제라드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