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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9 미네르바 사건과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 (2)
1. 들어가며

장하준 교수님께서 얼마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에게는 서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 가능하다."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중략) 식품 공장, 정육점, 식당 등의 위생기준이 어때야 한다는 것은 전염병 학자가 아니어도 모두 아는 사실이 아닌가. 경제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저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대학시절에도 남들 다 듣는 경제학 개론 수업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경제학 지식의 부족은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항상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글을 쓰고, 정부를 비판하겠어..."

하지만, 장하준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왜이리 도입이 장황한지 아마 의아하실겁니다.

법학은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아주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각종 법률용어가 매우 생소하고, 판결문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적 판단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관념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도 핵심적인 개념들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법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도출된 일종의 약속이기 때문에 상식적인 차원의 비판이 오히려 더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 교수님의 저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제가 쓴 글도 일반인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 포스팅을 올립니다. 

2. 미네르바 사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박대성씨는 2008. 7. 30.경 인터넷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을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2008. 12. 29.에는 아고라에 "정부가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검찰은 박씨의 글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환율정책 수행을 방해하고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등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이유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근거하여 박씨를 기소하였습니다.

제47조(벌칙) 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박씨는 위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3. 위헌법률심판

헌법재판소는 2010. 12. 28. 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흔히 통칭하여 부르는 "법령"에는 헌법,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법령들은 동일한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법령 중 헌법이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설사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이라고 할지라도 상위 법령인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안됩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이나 국민이 특정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신청하면 이에 대해 종국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몇가지 기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명확성의 원칙

헌법재판소는 우선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았습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률에서 금지된 행위인 '범죄'와 그에 대한 제재인 '형'을 누구나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만약 형법규정이 명확하지 못하다면 해석하는 법관마다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나쁜짓을 한 자는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률조항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죠.

법을 준수해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쁜짓"이라는 요건이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행위가 나쁜짓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나쁜짓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동성연애, 촛불집회 등 판단하는 사람마다 각 행위가 "나쁘짓"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법률조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위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요약문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어떠한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판단주체가 법전문가라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현재의 다원적이고 가치상대적인 사회구조 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상황이 문제되었을 때에 문제되는 공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바,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익간 형량의 결과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에 위반된다."(헌법재판소 결정 요약문 중)

헌법재판소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공익을 해한다고 할때의 "공익"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추상적입니다.


다양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공익"이라는 개념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으며 판사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구성원 입장에서도 특정한 행위를 할 때, 나의 행위가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지 여부에 대해서 쉽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 조항이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과잉금지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싶으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만 제한할 수 있고(제한의 목적), 제한하는 경우에도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해야 하며(제한의 방법),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해야 합니다(제한의 정도).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경우"를 학문적으로 구체화 한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입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며, 만약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원칙입니다.

목적의 정당성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위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의 목적은 "허위 사실 유포 등에 의한 국가혼란의 방지"일 것이므로 목적 자체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단의 적정성이란 기본권 제한의 수단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허위 사실 유포 등에 의한 국가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 한다면 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므로 수단의 적정성 요건도 충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침해의 최소성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이 존재할 경우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가장 낮은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자는 오른손을 절단한다"는 법률조항은 수단의 적정성은 충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른손이 절단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국민들이 재산권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법률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징역이나 금고, 벌금과 같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절도죄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익의 균형성이란 제한되는 기본권에 비하여 기본권 제한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이 보다 더 커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위에서 든 예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재산권의 보호라는 목적이 평생동안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절도범의 불이익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위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이번 판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을 당해 사건에서와 같이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통신에 적용하는 것은, ‘공익’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된다. 허위사실의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이 침해된다거나 국가질서의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하여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 주체로 하여금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표현행위를 억제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은바, 제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표현이 억제된다면, 표현의 자유의 기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헌법재판소 보충의견 중)

헌법재판소에서는 본 조항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허위사실을 표현한 모든 경우를 처벌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불법적인 폭력을 조장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통신"과 같이 범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규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범위가 현저히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6. 마치며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과 관련하여 법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이 판결의 취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글을 썼는데,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드는군요.

이번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아직 미래가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기본권 제한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하고, 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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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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