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세계적인 경영석학인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는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중 하나입니다.

그가 책에서 언급한 "1만 시간의 법칙", 곧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게 회자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7장에서 다루었던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이라는 내용이 가장 인상깊었고, "1만 시간의 법칙"에 비해 우리에게 보다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문화가 대한민국의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2. PDI란 무엇인가

말콤 글래드웰은 1997년 대한항공 801편이 괌에서 추락한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추락사고가 PDI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PDI는 Power Distance Index의 약자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권력거리지수"가 될 것입니다.

PDI는 특정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다시 말해, PDI는 위계질서가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한 것으로, 문화적 배경에 따라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바를 얼마나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각 문화별로 PDI가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기 위하여 홉스테드는 "직원들이 관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PDI 수치가 높은 국가일수록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브라질에 이어 PDI 수치가 2번째로 높은 국가입니다.

3. PDI가 괌 사고에 미친 영향
 
97년 추락사고 당시 기후가 매우 좋지 않았고, 괌 비행장의 유도등도 고장난 상태였으며, 기장은 오랜 비행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기장은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다가 언덕을 들이받게 됩니다.

물론 여러가지 상황들이 사고의 위험성을 증가시켰지만 우리가 이 사고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동승하고 있던 부기장이나 기관사가 기장의 무리한 착륙시도를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부기장과 기관사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완곡어법을 사용하였으며, 이로 인해 기장은 자신의 오판을 수정하지 못했습니다.

4. PDI와 대한민국의 조직

흔히, 대한민국의 조직에는 소통이 부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물론 이런 문화적 배경이 자리잡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유교적 가부장제도, 일제의 식민통치, 군사독재시절의 철권통치가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 문화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권위주의적 조직문화는 어린사람, 직급이 낮은 사람이 연장자나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언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이는 비단 항공기 조정실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며, 국가, 기업, 학교 등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피라미드식 관료제가 높은 PDI와 결합하면 조직에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고, 책임도 집중됩니다.

이와 같은 경우 의사결정권한이 결여되어 있는 하위직급자들을 무력감에 빠지고,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어차피 내가 얘기해봤자 받아들여 주지도 않을텐데...."

"어차피 책임자가 자기 마음대로 했으니, 난 아무 책임이 없어..."

비행기 조종에 부기장과 기관사를 두는 이유는 기장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보좌진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게 되면 조직의 존재 이유 자체가 소멸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의 문제제기 경청해야

말콤 글래드웰의 지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조직의 의사결정구조가 왜곡되면, 비행기 추락사고보다 훨씬 참담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조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조종실에서 일어나는 실수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데, 그러한 실수가 만약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차원에서 발생한다면 얼마나 더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까요

종래의 조직문화를 혁신하는데에는 적지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장기적 발전을 원하는 리더라면 이러한 문제를 보다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지속적인 노력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한다면 그 성과는 아마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노력 이상의 보상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셨다면 그의 TED 강연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고객의 다양성을 존중하라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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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훈과의 만남

김훈이 '칼의 노래"를 처음 발표했을 때, 평론가들은 그가 우리 문단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남한산성을 읽으며, 그의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수려하고,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문체에 압도당했다.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찬사가 결코 그에게는 넘치지 않았다.

2.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여진족의 족장이던 누르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여 후금을 세운다. 이후 국호를 청으로 변경하고, 청을 오랑캐로 여기며 신하의 예를 받들지 않는 조선의 왕을 벌하기 위하여 10만 대군을 보낸다.

강화도로 들어가 청군에게 대응하고자 하던 인조는 길이막혀 남한산성에서 머무르게 된다.

"남한산성"은 인조가 청에 맞서 47일간 남한산성에서 항전했던 시간을 기록한 소설이다.

추위에 몸이 얼어가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숨통이 끊어져가던 조선왕조와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3. 주전파와 주화파의 갈등

언제 어디서나 외침이 발생하면 명분을 중시하여 전쟁을 주장하는 주전파와 삶을 얻고자 하는 주화파가 갈라지게 마련이다.

김훈은 소설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을 통해 이러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선과 절대악 사이의 싸움은 아니다.

그리고, 죽음을 목전에 두어본 적 없는 자들이 역사의 이름을 빌려 함부러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도 참 주제넘는 짓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삶의 이유가 있고,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 사실을 참으로 뼈저리게 느낀다.

4. 입으로 성을 지키는 자들

남한산성에서는 입으로만 대의를 말하는 수많은 위정자들이 나온다.

물론 그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

그들은 하급 군병들에게는 준엄한 군율을 요구하면서도 언제나 입으로 결사항전을 떠들어댄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을 일으키는 자와 전쟁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자는 따로 있다.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 내놓지 않으면서 전쟁을 논하는 자와, 위정자들의 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자들

그 사이에는 삶과 죽음보다 더 넓은 간극이 있다.

5. 민초들의 고통

전쟁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사회의 약자들부터 희생시킨다.

특히 어린이와 여자들은 첫번째 희생자다.

김상헌은 청병들에게 얼음길을 인도해줄까봐 자신의 길을 인도해준 뱃사공의 목을 밴다.

하루하루 끼니를 연명하고 자식들을 길러야하는 민초들에게 몰락하는 조선왕조의 명분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김상헌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조선왕조는 결국 인조가 오줌을 누는 칸 앞에서 삼배를 하면서 처절하게 무너진다.

6. 삼전도의 굴욕

칸이 삼전도에 당도하고, 인조는 끝내 항복을 결정한다.

목숨은 길고 질긴 것이기에, 그들의 삶은 굴욕이후에도 계속된다.

치욕위에도 삶은 계속되며, 그들은 그렇게 훗날을 도모한다.

참 가슴아프도록 무참하게 짖밟히는 조선왕조를 보면서,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던 민초들의 질긴 생명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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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백산맥과의 만남


제가 태백산맥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중반에는 태백산맥이 새내기 추천도서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는 1945년 해방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고교시절 국사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수업시간에 "역사는 50년이 지나야 비로서 평가할 수 있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해방이후의 역사는 생략하셨습니다. 

어찌됐건 여순사건으로 시작하는 태백산맥을 통하여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민족의 수난이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웠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백산맥 덕분에 반공이데올로기나 주체사상에 경도되지 않고 비교적 합리적인 시각으로 현대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작가의 치열함과 읽는 자의 부끄러움

태백산맥을 보면서, 조정래의 글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밀하고, 시적인 배경묘사, 수많은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갈등구조가 너무나도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0권짜리 장편인데도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않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이렇게 흥미롭던 소설이 작가에게는 얼마나 뼈를 깍는 고통이었는지 황홀한 글감옥을 보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이어지는 3편의 대하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20년간 술 한잔 마시지 않으면서 하루에 16시간씩 집필작업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글만 써도 힘들었을텐데, 그 사이사이 보수단체로부터 걸려오는 협박전화에 시달렸으며, 검찰 수사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문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쓴 작품이니 어찌 독자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황홀한 글감옥을 보니 그의 작품들을 너무 건성으로 읽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3. 조정래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

조정래 선생님은 황홀한 글감옥을 통해서 문학이란 무엇인지,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작품은 어떤지, 인생은 어떻게 살아햐 하는지에 대하여 솔직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참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존경할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우선 철저한 자기절제, 작품과 주변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 무서울 정도의 책임감 등

그를 통해 문학이 뭔지, 인생이 뭔지 참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4. 글을 잘 쓰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저에게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참으로 간절한 욕구가 있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지 참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조정래 선생님이 충고하는 것처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원칙에 충실한 자만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특별할 것은 없지만, 40년간 작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조정래 선생님이 직접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무게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분들, 글을 잘 쓰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저의 가슴을 가장 깊게 후벼팠던 문장 하나를 인용하면서 끝마칠까 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 으뜸인 것이 좋은 머리 받고 태어나 많은 공부를 하고서도 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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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축구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사고 한참동안 이런 저런 사정때문에 못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후기를 올리게 되네요.

1. 아파르트헤이트

아파르트헤이트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행되었던 인종차별 정책입니다. 백인우월주의를 명시적으로 법제화한 것으로 이로인해 유색인종들은 교통수단, 교육시설과 같은 공공시설의 이용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인종간에는 결혼 뿐만 아니라 성행위 까지 엄격히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반인륜적인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해 저항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을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키기 위해 탈출이 불가능한 로벤섬에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한 교도소를 건설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넬슨 만델라도 로벤섬에서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했다고 하는군요.



2. 죽음의 로벤섬

로벤섬에 수용된 정치범들에 대한 교도관들의 학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구타와 욕설은 기본이고 정치범들의 자존감을 박탈하고 모멸감을 주기위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합니다. 영양도 형편없고, 양도 부족한 식사를 제공하고, 일과중에는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또한 다른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정치범들을 같은 감방에 배치해서 충돌과 분열이 일어나도록 조장합니다.

3. 미래에 대한 믿음

하지만,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감자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아파르트헤이트를 해체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남아공을 설계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능력있는 수감자들이 동료 수감자들에게 읽고 쓰는 법, 정치/경제를 가르칩니다. 그들의 공동체의식과 학구열에 매료되어 나중에는 교도관도 수감자들로부터 교육받는 일까지 발생하죠

4. 축구는 왜 위대한가

그들은 또한 절망의 로벤섬에서 축구 리그를 만들고 경기를 개최합니다. 축구는 험란한 수용생활 속에서 체력을 단련하고, 여러 정치집단으로 나누어져있는 수감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수감자들은  축구를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스포츠를 하는게 뭐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축구는 군대에서, 학교에서도 인기있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교도소 당국과 약 4년간의 투쟁을 벌입니다.

또한 그들은 축구협회, 심판위원회 등 각종 협회를 조직하고, 조직 및 경기에서 FIFA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그들의 리그를 기억하기 위해 경기기록를 포함한 모든 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그들은 "심판이 없으면 축구는 없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규칙과 규정을 중시하였으며, 심판의 판정에 대해 논란이 있으면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이를 해결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축구는 그냥 재미삼아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죠.

5. 스포츠의 이중성

스포츠는 정말 위대한 유희입니다. 좋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항상 깊은 감동과 여운을 가져다주며,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하지만, 스포츠에는 참 이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80년대 신군부처럼 스포츠를 통해 대중을 바보로 만들고,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자 스포츠를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벤섬의 스포츠처럼 사람들에게 성취감을 부여하고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죠.

같은 물을 먹어도 젖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드는 것처럼 스포츠도 우리에게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그리고 축구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결국 공동체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는지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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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저는 원래 일본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던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을 읽는 것이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공투를 경험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혁명의 실패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남겨진 깊은 상실감을 소설로 승화시켰고, 일명 운동권 끝물로 불리던 90년대 중반 학번들은 더이상 혁명과 이념이 의미를 갖지 못하는 대학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었습니다.

"상실의 시대"는 이미 자본주의가 깊게 스며든 대학에서 좌표를 잃고 흔들리는 청년 지식인들에게 하루키가 들려주는 째즈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상실의 시대에 감명받아 이후 하루키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읽어봤지만, 상실의 시대만큼 깊은 여운을 주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그 이후로 일본 작가들의 책이 봇물 터지듯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차이도 존재하고, 번역의 미숙함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경우도 많아서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일본소설을 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서핑을 하다가 아주 우연히 어떤 블로거께서 추천사를 남기신 것을 보고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라는 일본 소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오쿠다 히데오의 첫 작품이었는데, 일단 감상을 한마디로 기술하자면 "유쾌하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인 주인공 지로의 성장을 기본테마로 잡고 있습니다.

남학생이 주인공인 성장소설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이야기들, 예를 들면 동네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돈을 뺏기는 사건, 같은 반 여학생과의 소소한 연애사건, 첫 몽정과 여탕 훔쳐보기 등이 다루어집니다.

하지만, "남쪽으로 튀어"에는 이런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기본줄기 위에 지로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찰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지로의 아버지는 종래 과격 운동권이었다가 오랜동안 계속된 조직 내부간의 갈등에 염증을 느껴 이제는 무정부주의자가 된 인물입니다. 연금을 수금하러 온 공무원과 경찰들에게 온갖 악담을 퍼붓는 분이죠.

아들인 지로의 수학여행 경비가 너무 비싼 것은 선생님들이 여행사와 결탁하여 뇌물을 받기 때문이라고 학교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합니다.

우연히 주인공의 집에 얹혀살게 된 아버지의 후배가 반대파에게 테러를 감행하면서 도쿄에서 살던 주인공과 가족들은 남쪽 섬나라로 이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이 정착하게 된 조용한 섬마을에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한 강제철거가 시작되면서 집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남쪽 섬에 살게되면서 지로와 가족들은 학교에 대해서, 선생님에 대해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 소설 최대의 장점은 이런 묵직한 주제들을 아주 흥미롭고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설은 도시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란 무엇인지, 자연을 벗삼아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땀흘려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이 째즈였다면, 오쿠라 히데오의 소설은 여행을 떠나며 듣는 로큰롤같은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잠시라도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책을 읽는 잠깐 동안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는듯한 행복감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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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제가 후불제 민주주의를 처음 읽은 것은 2009년 3월이었습니다. 벌써 1년전의 일이죠.

그런데, 왜 이제와서 1년전 책을 리뷰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6.2 지방선거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로 우리는 촛불집회, 미네르바 사건, 용산 철거민 참사를 겪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는 천안함 침몰이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어떤식으로 헌법이 유린당하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습니다.

원래 헌법은 크게 기본권과 통치구조로 나누어집니다. 기본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헌법이 부여한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하며, 통치구조는 극히 단순화 해서 설명하자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헌법기관의 기능과 권한을 규정한 조항입니다.

물론 "후불제 민주주의"는 일반적인 헌법 교과서의 목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전반부 "헌법의 당위" 편에서는 헌법의 기본권 조항을 중심으로, 원래 국민들에게 보장되는 기본권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면,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기본권이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후반부 "권력의 실재" 편에서는 참여정부 시대에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참여정부의 성과와 실패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을 심각히 우려했으며, 실제로 이러한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이 중요한 진리를 헌법전 속에 갇힌 단순한 교조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발전을 멈출 것입니다.

유시민은 책에서 되풀이하여 "국민들의 의식이 발전하는 딱 그만큼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오랜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6.2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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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1. 지사로서의 하워드 진 그리고 투사로서의 하워드 진

지금은 작고하신 조영래 변호사를 이야기하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사로서의 면과 투사로서의 면모를 같이 갖기는 참 어려운데, 조영래 변호사는 이 두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하워드 진도 지사로서의 면모와 투사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춘 얼마 되지않는 사람 중 한명이 아닐까 합니다.

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입니다. 그와 동시에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심에 서있던 반전 평화운동가이기도 하지요

지사로서의 그는 "미국 민중사"를 통해 종래 영웅 중심의 역사기술에 문제를 제기하여, 노동운동가와 인권운동가 등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올립니다.

또한, 그는 세상의 불의와 맞서 싸우는 투사로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인종차별 및 각종 전쟁에 반대하며 시민불복종 운동을 지도했습니다.

2.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그의 적지 않은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저서 중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가장 재밌고, 쉽게 읽히며, 그가 왜 진보적 지식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에세이로,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그가 흑인들의 선거권 쟁취 및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부분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격수로 참전하고 돌아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그의 시민불복종 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그는 현대전의 참상을 알게 됩니다. 제대후 군인 원호법 덕분에 역사를 공부하여 대학교수가 되고, 흑인 여자대학인 스펠만 대학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그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됩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니라 비록 실패할지라도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3. 그가 남긴 교훈

그는 책에서 성공하지 못한 저항이라고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은 아니며, 이런 일련의 투쟁을 통해 결국 역사가 변화한다는 소신을 일관되게 펼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학자들이 판을 치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하워드 진의 삶을 돌아다보면 한 명의 인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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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석훈 교수의 조직의 재발견이라는 책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1. 3년차 직장인이 바라보는 한국의 거대기업

저는 이제 3년차 직장인입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서 직장생활을 10년 이상 하신 분들도 적지 않을테니, 3년차 직장인의 애로사항을 들먹인다면, 아마 어린아이의 치기로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남들이 꽤 좋다고 여기는 회사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기게 되어 사실 제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상이 깨지는데는 채 3달이 걸리지 않더군요.

이건 제 개인적인 문제, 예를 들면 월급이 적다던가, 일이 너무 많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점과 관련된 실망이었습니다.

조직이 비대해지다보면 당연히 관료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제가 경험한 기업은 기대했던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더군요.

제가 느낀 몇 가지 문제점들을 이야기해볼까요?


가. 조직이 일을 하는 시간과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고하는 시간은 7:3이 되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나.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내리는게 아니라, 도덕교과서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되풀이하고, 결국 나중에는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다.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양 부서의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경우에는 회사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가 결정되기 보다는 부서간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는 쪽의 이해관계대로 의사결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라. 회사에 중요한 일인지 여부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거대 조직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이런 관료주의의 폐해를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고민들을 시작한건 회사의 미래를 깊이 고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에서 실무자들이 겪게되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2. 조직의 재발견

"조직의 재발견"을 읽으며, 한국 기업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우석훈 교수는 한국의 거대기업들이, 내부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 여성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 등을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전적으로 맞는 지적입니다.

평생고용은 이미 국어사전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말이 되었고, 청년실업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여 유휴 노동력이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또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빌미삼아 기업은 점점 많은 기능들을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사람을 자를 수 있고,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이 편하게 부려먹을 수 없는 사람은 자르고, 더 값싼 인력으로 이를 대체하는 것이 한계효용을 높이는 방법이겠지만, 반대로 피고용인의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일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월급을 타고,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통해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판단입니다.

이런식의 악순환은 이미 기업내부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동안은 변화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3. 조직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삼성전자 엔지니어들이 요즘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죠. "능력이 없어서 아이폰 같은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제품을 기안하면 위에서 짤린다"

이런 폐쇄적인 옛날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세계시장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낮은 임금의 숙련노동자를 데리고, 세계 1위 기업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더이상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확실해졌습니다.

와이파이 기능을 빼는 등 이통사의 요구를 적절히 들어주면서 예쁘고, 값싼 핸드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면 삼성에게 더이상 미래는 없습니다.

얼마전에 터진 토요타 사례를 한 번 볼까요?

이미 수차례 내부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극대화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내부고발자를 징계했던 토요타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토요타 성장의 이면에는 철야와 잔업으로 과로사한 노동자와 계속되는 원가절감으로 폐업위기에 몰린 협력업체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석훈 교수가 지적한 조직의 문제를 안고가는 한 한국기업이 애플이나 구글, 닌텐도를 이기는 일, 토요타의 전철을 밟지 않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제 기업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유휴 노동력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수평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만들고, 내부고발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는 일은 비록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것이 결국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점을요.

4. 마치며

물론 이 책에서 한국 조직의 문제점은 정확히 잘 지적하고 있으나, 이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안없는 비판이라고 욕하기 전에 과연 우리가 얼마나 조직 내부의 문제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왔는지 반성해 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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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일간지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광고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라도 빨리 리뷰를 올려서 책판매에 일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갑자기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포스팅이 약간 늦어졌습니다.

책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 참담해서 분노도 치밀어오르고, 책을 다 읽을 무렵에는 슬프기도 하더군요.

책을 읽으며 느낀 개인적인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1. 김용철은 배신자인가?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을 통해서 김용철이 양심고백을 할 때부터 이번 책이 출간될 때까지 빠지지 않고 나오던 얘기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용철은 배신자라는 비판입니다. 삼성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다가 뒤늦게 삼성과의 관계가 나빠지자 양심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김용철이 존경받을만한 혁명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사태를 바라봄에 있어 문제의 본질은 "김용철이 배신자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김용철의 양심고백을 통하여 이건희 일가와 구조본으로 대표되는 가신그룹이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는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김용철의 양심고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의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에 대해서, 그리고 법조계, 행정부처, 언론의 현수준에 대하여 잘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양심고백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런 소중한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용철이 배신자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는 현재의 참담한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김용철이 배신자인가와 무관하게 그에게 감사해야 하며, 그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삼성은 과연 합리성이 지배하는 조직인가

삼성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꼽힙니다. 비록 부패했을지는 몰라도, 유능한 엘리트 집단이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습니다.

작년 삼성전자가 매출 100조에 영업이익 10조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무리 욕을 해도 "삼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대한민국을 먹여살릴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삼성이 부패한 집단일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무능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임직원들이 이건희 독재체제 속에서 말도 안돼는 사업을 벌이느라고 심적 갈등을 겪었을지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그나마, 삼성이 계속하여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참담한 현실

하지만, 참으로 가슴아픈 것은 앞으로 삼성도, 대한민국도 별로 변화할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재벌들도 능력이 없거나, 자본이 부족해서 하지 못할 뿐 할 수만 있다면 삼성같은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싶을 겁니다.

사회안정망 없이 정글에 내팽개쳐진 대한민국 국민들은 집을 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병든 가족을 치료하는 무거운 짐들을 온전히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회사에서 쫓겨난다면, 계속적인 경기침체로 잠재적인 노동력이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재취업이 가능할까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게 피를 빨리며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자영업을 시작했다가는 평생 온가족이 신용불량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가족중에 누군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어렵게 대기업에 취업하게 된다면, 회사의 비리에 대해 용기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가져라, 어디가서든 열심히 하면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참 가슴아픕니다.

하지만, 희망을 놓을 수는 없겠지요.

김용철 변호사가 책의 말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거짓이 이긴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고 불의가 이긴다고 해서 불의가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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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

대중의 지혜

책 이야기 2010.01.04 18:11


인터넷을 시작하고 찰스 리드비터, 제임스 서로워키, 하워드 레인골드 등을 알게되면서 집단지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을 요약하면, 절대적 권력을 쥐고있던 소수로부터 대중에게로 권력은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활성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권력이 대중에게로 서서히 이양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낙관전 전망을 내놓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대중은 소수보다 현명하며, 그들은 항상은 아닐지라도 대체로 맞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똑똑한 소수의 판단이 대중의 판단보다 옳다면, 권력을 똑똑하고 현명한 소수에게 위임하는 편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은 제임스 서로워키의 책 "대중의 지혜'를 소개할까 합니다.

저자는 수많은 사례들을 들어, 대중은 항상 똑똑한 소수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대중의 지혜가 모아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도 집단의 구성원이 다양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이 다양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전반적인 사고의 폭이 확장되고, 옳은 판단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실험결과에 따르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의사결정을 내릴경우 극단적인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오판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사법부, 관료조직 등이 명문대, 강남거주, 고소득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불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의사결정의 기초가 되는 정보는 공개하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않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편파적 보도 등은 정확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제약조건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한 위키피디아, 리눅스, 구글의 성공 등은 집단지성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었을 때 인류가 얼마나 많은 가치들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과 관련하여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대중의 지혜는 항상 옳다는 전제하에 자칫 결론에 원인을 끼워맞추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A라는 의사결정은 결론적으로 틀렸네.... 그럼 그건 대중의 의사결정이 잘못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야.

B라는 의사결정은 결론적으로 맞았네... 역시 대중의 판단은 항상 정확해.

책 안에서도 약간은 작위적이라고 보이는 사례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판단이 대체로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이는 대중에게로의 권력이양에 대한 정당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은 아니어도 대체로 맞다면, 장애요인들만 효과적으로 제거하면 되겠죠.

물론 대중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대중의 신격화는 오히려 전체주의를 부를 수도 있으니, 이 또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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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라드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