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이 눈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애들 숫가락을 뺏다니요

가난을 천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리고 철없고 죄없는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새겨넣은 대한민국...

분노와 슬픔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글들이 많아 사족같이 여겨지지만 오늘은 제가 겪은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2008년 11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로 기억됩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도시락을 공급하고 있었고,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봉사를 나가 도시락 배달에 참여했습니다.

동사무소와의 협조하에 도시락을 받을 저소득층 아이들을 선발하고, 도시락을 동사무소에 갖다주면 학생들이 도시락을 가져가고 전날 받았던 빈 도시락통을 다시 가져다 놓았습니다. 

배달할 곳은 많고, 동사무소가 문을 닫기 전에 배달을 끝내야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몹시 서둘렀던 기억이 납니다.

쌀쌀한 날씨에 양손에 도시락을 들고 뛰어다니는게 힘들기는 했지만, 이 도시락으로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거란 생각에 참 뿌듯했었습니다.

마지막 동사무소에 도시락을 갖다드리고 빈 도시락통을 받아 배달용 봉고버스에 실은 뒤, 봉사단체에 근무하시는 분과 담소를 나누며 담배를 한대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동사무소로 들어가는 여학생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여학생은 상당히 마른 체구에 양쪽 귀에는 하얀색 이어폰을 끼고 있었습니다.

동사무소 앞에서 고개를 숙인채로 잠시 좌우를 살피더니 동사무소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습니다.

잠시후, 그 여학생은 제가 지금막 배달했던 도시락 하나를 들고 동사무소를 나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옷차림만 봐서는 또래 여학생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더군요.

하지만, 여학생이 사라지고 난 뒤에, 무료 도시락을 받기위해 매일 동사무소에 찾아오는 그 여학생이 과연 어떤 심정일까 한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아주 잠시 본 얼굴이지만, 불안이 섞인 그 표정은 마치 사진으로 찍어 머리속에 넣어둔 것처럼 오랜동안 잊혀지지 않더군요.

얼마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일까요...

혹시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까 매번 동사무소에 올 때마다 불안불안 했을겁니다.

그 여학생이 끼고 있던 이어폰은 나도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 징표같은 것이었겠죠.

고등학생, 아직 먹고사는걸 걱정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요?

극심해져가는 빈부격차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아이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연간 국민소득이 얼마이고, 무역규모가 세계 몇 위이고, G20을 개최하고...

사실 이런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정작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밥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 그딴걸 자랑이라고 연일 떠벌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 복지사업의 집행은 운용 가능한 예산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 합니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는지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닌가요?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에 예산이 우선적으로 배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일이 더 급하고 중요한지는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먹이는 일,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의 감수성에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은 최우선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때부터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매일매일 확인하며 산다는 것...

너무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여유있는 아이들의 무임승차 보다, 가난한 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만약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없다면, 왜 다른 사업을 위한 비용이 무상급식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복지를 단순히 시혜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가 이미 너무나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아이들의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아이들의 자존감이 더 무너지기 전에, 정말로 "가난"은 "불편"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제라드76
행정안전부에서 행정고시 폐지를 발표한지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약간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행정고시 폐지가 얼마나 우려할만한 일인지에 대해 제 생각을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현재의 일률적인 고시제도로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정부기관에서 일 할 기회를 얻지 못하므로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행 고시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행정고시 폐지의 가장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감히 단언하건대 저는 행정고시 폐지를 통하여 이러한 목적을 절대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 계급간, 계층간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행정고시를 폐지하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행정사무관을 선발하게 된다고 합니다.

서류전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항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출신학교, 자격증, 외국어능력. 사회경험 등이 될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공직자로서의 자세, 인품, 조직융화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발한다고 하겠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만으로 이런 사항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가장 유리할까요?

당연히 로스쿨 출신 변호사, 해외 석박사, 장기 어학연수 경험자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스펙을 쌓기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현재보다 더욱 낮아지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행정고시가 폐지되면 사무관 집단에서 강남출신 및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졸업자 비율이 수직 상승할 것입니다.

2. 이념적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면접에서는 뭘 물어볼까요?
 
당연히 전문지식도 포함되겠지만 국가관, 안보관 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정고시를 폐지한다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구성원들이 정부기관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현재시점에서 행정고시가 폐지된다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처럼 진보적 단체에 있던 사람들이나, 각종 환경단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인재들이 정부기관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4대강은 환경파괴사업이라고 이야기할 응시자가 있을까요?

설사 그런 응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합격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행정고시가 폐지되면 시험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공직에 진입하지 못했던 능력있는 인재들이 정부기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재의 사상검증이 폐지되지 않는다면 이념적 다양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정부기관에 진출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3. 공무원 조직의 획일화로 인한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공무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싶다면 차라리 대학별 쿼터, 지역별 쿼터, 성별 쿼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다.

시험을 폐지한다면, 특정지역출신/특정학교출신/특정계층출신 등이 정부기관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직 공무원들이 특정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진다면 현재 행정고시를 통하여 확보되고 있는 최소한의 다양성마저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거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행정고시 폐지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사회 전체적인 규모로 보면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조직의 구성원들이 획일화되어 입게되는 피해는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제라드76
시사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 민노씨께서 상지대 구 재단측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소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수많은 블로거분들이 이번 사건에 분개하면서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볼까 합니다.

1. 사이버 명예훼손이란 어떤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일까요?

우선 참고로 아래 규정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벌칙)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죄는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우선 제1항을 뜯어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정보통신망을 통하여/공공연하게/사실을 드러내어/명예를 훼손한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합니다.

제2항은 제1항과 다른 요건은 동일하지만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경우에 가중처벌하는 규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민노씨의 포스팅에 제가 알고 있는 한 허위의 사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제1항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비방의 목적"이란 "공공의 이익"과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민노씨의 포스팅은 구 재단이 복귀할 경우 사학비리가 다시 발생하고, 학교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으므로, 이를 예방한다는 목적에서 쓰여졌으므로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인정된다면 이와 대립관계에 있는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향후 민노씨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입니다.

민노씨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블로그에 구 재단에 대한 포스팅을 올렸고, 구 재단의 범죄행위를 적시하였으며, 이와 같은 사실들이 구 재단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사실 자체는 법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어보이고, 지나치게 학술적인 부분이니 더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2.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보호

민노씨 사건 이후로 많은 분들이 "도대체 법을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런 사건에 대해서도 형사고소가 가능하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명예훼손으로 수사받고, 처벌받아야 하냐고

참여연대에 대한 형사고소, 김연아 회피 동영상에 대한 형사고소, 김미화 블랙리스트 관련 형사고소 등등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네티즌들의 분노는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예를 들면, 누군가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나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포스팅한 경우를 한 번 상정해 보시죠

제라드76은 동성연애자다! 제라드 76은 전염성 질병을 앓고 있다!

제가 정말 동성연애자라든가 전염성 질병을 앓고 있다면 이는 사실을 언급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제가 실제로 동성연애자라든가 전염성 질병을 앓고 있다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저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저의 명예는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까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을겁니다.

따라서,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법률적 보호수단을 두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개인의 인격권은 표현의 자유 만큼이나 중대한 기본권이며, 개똥녀 사건 등에서 보듯이 마녀사냥식 표현의 자유로 인해 개인의 인격권이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3. 명예훼손은 손해배상으로

그러나, 문제는 현행 법규가 명예훼손을 형사처벌로 제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벌이란 우리가 잘 알고있는 사형, 징역, 금고, 벌금 등을 말합니다.

형벌이 부과되기까지 피의자는 수사, 기소, 재판으로 이어지는 형사소송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런 형사소송 절차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일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이루어지는 피의자 신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사람을 엄청나게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거든요. 특히 구속수사가 진행될 경우 평범한 사람들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나마 PD수첩, 김미화씨처럼 여론이 주목하고,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서도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네티즌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혼자서 경찰 및 검찰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명예훼손을 이유로 피의자를 구속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의자는 쉽게 대항의지를 상실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법원의 관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시범 케이스가 언론에 보도되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자기검열을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만약, 형사처벌 규정을 폐지하고 단순히 민사상 손해배상의 문제로 해결한다면 구속될 일도 없고, 경찰이나 검찰에 들락거릴 일도 없습니다.

원고와 피고의 입장에서 동등하게 싸우고, 법원을 통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검찰과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며

비판에 대한 관용은 그 사회의 표현의 자유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또한,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폭넓게 보장되고 있는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공인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는 사회에서 당연히 포용되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어야하고, 법률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의 상식적이고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일관되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법원에서 계속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리는 방법을 통해 탈출구를 만드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관된 판단을 통하여, 공인이나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성립되면,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피의자를 압박할 목적으로 고소를 남발하는 일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다른 여러가지 사건과 마찬가지로 민노씨 사건도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모쪽록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Posted by 제라드76
지난 몇주간 일이 한창 바빠 상지대 투쟁에 힘을 보태지 못해 심리적 부채감 때문에 한동안 괴로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김문기 전 이사장의 비행과 김문기 이후의 상지대의 발전상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조금 늦었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상지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볼까 합니다.

1.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저는 상지대 학생이 아닙니다. 가족, 친구 중 상지대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낸 등록금이 김문기 전 이사장에 의해 횡령된 적도 없고, 김문기에게 충성서약을 강요당한 바도 없습니다.

용공조작 사건에 말려 간첩으로 몰린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상지대 사태를 우려하고 있는 걸까요?

단순한 정의감의 발로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등학교의 40%, 대학교의 85%가 사립인 대한민국에서 사립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으로 인한 피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 사립학교의 추억

저는 서울에 있는 한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기독교 성향의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아직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목요일 1교시마다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던 예배시간입니다.

참 우스운 것은 뺑뺑이로 들어간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나 불교를 믿는 학생들에게 예배 불참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몇몇 용감한 학우들이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예배보기 싫으면 다른 학교로 전학가"

이사장이 공금을 횡령하고, 친인척으로 학교의 핵심요직을 채우는것에 비하면 예배강요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사례를 예로 든 것은, 사립학교가 설립자의 사적 소유물로 당연시 되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종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체 학생을 예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학교의 돈을 자신의 돈처럼 여기지 않을거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3. 재산권과 교육의 공공성 사이의 싸움

상지대 사태는 단순히 김문기와 상지대 사이의 싸움이 아니라, 대학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관점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김문기가 복귀한다면 우리는 설립자의 재산권이 교육의 공공성에 우선한다는 현실적 판단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설립자는 상당히 많은 사재를 털어넣었다.

그가 치른 경제적 희생을 감안하면, 학교운영에 대한 종국적인 권한은 설립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일응 타당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설립자의 설립이념이 절대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우리에게 합리적 대학 선택권이 존재해야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을 선택할 자유가 있나요?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이라는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대학졸업장이야말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요즘에는 대학을 가야한다는 사실이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 만큼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결국, 성적이라는 변수가 선택권에 일정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성적과 거주지 등에 의하여 몇몇 대학중 하나를 강제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사립대학이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국립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연 학생들이 설립자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청춘 4년을 날리는게 타당한가요?

사립학교가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고등교육을 대체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립학교에도 당연히 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재단이 비과세를 비롯한 각종 특혜를 부여받고 있는 것도 사립학교가 교육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공공성을 더이상 사유재산이라는 말로 더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4. 당신과 나의 문제이며, 우리 아이들의 문제입니다

통제받지 않고, 비판받지 않는 권력이 재등장하여 전보다 더한 비리와 전횡이 사립학교들을 다시 지배할 수 있습니다.

상지대가 무너지면 도미노 효과는 사립학교 전체에 퍼지고, 우리는 다시 한걸음 교육의 공공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겪었던 불합리와 모순, 사립학교에 다닐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을까요?

늦었지만 힘을 모아 반드시 상지대를 지켜냈으면 좋겠습니다.

상지대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분들! 힘내십시오!


<상지대 사태와 관련하여 다음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민노씨 : 10분이면 상지대를 구할 수 있습니다(
http://minoci.net/1124)

상지대 구출 대작전 :
http://saveschool.net/
Posted by 제라드76
1. "상식", '상식에 반한다"

상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네이버 백과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상식(常識) :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응용표현으로는 "상식에 어긋난다", "상식을 벗어난다" 등이 있더군요

상식에 어긋난다거나 상식을 벗어난다고 말 할 때의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아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는 지식을 의미할 것입니다.

2. 상식에 어긋나는 사회, 상식을 벗어나는 사회

촛불집회, 용산참사, 참여연대 수사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매일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다시 상식을 벗어나는 상징적인 2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고, 다른 하나는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사건입니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충실하게 보장되고 있는지",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장애인,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범죄자 등의 인권은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 등을 통해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87년 개헌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전진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습니다.

물론 더디 가는 경우도 급히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전진해 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는 아주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서 이렇게 빠르고 쉽게 후퇴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낍니다.

적어도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처럼 야당이나 시민단체, 노동조합과 같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이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국가적 폭력으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상식이라고 부릅니다.

3. 상식이 상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그러나, 상식에 입각한 이와 같은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4대강이 문제가 아니라, 세종시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당연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대한민국에서 과연 보호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Posted by 제라드76
오늘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아수나로"라는 중고교생이 중심이 된 인권단체에서 일제고사 및 교원평가제 등에 반대하는 집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성취도-교원평가 반대” 중고생 단체가 홍보전

학생들이 스스로를 교육의 주체라고 판단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용기와 문제의식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1. 일상적인 폭력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선생님의 말이 곧 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폭력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별로 억울하거나 기분나쁠 것도 없었습니다.

지각을 해도,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심지어 시험을 못봐도 체벌이 가해졌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여학생들은 치마로 된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지금도 복도에서 마주치던 몇몇 여학생들의 종아리에 남아있던 시퍼런 멍자국이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이 선명한 멍자국을 내보이는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지, 그들의 감성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런 일상적인 폭력이 부조리하거나 불합리하다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감히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그러한 권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의 문제, 그들의 문제제기

2개월에 한번은 꼭 전국규모의 모의고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말이 되면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들과 갈 수 없는 학생들은 거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진도도 시험도, 모든 커리큘럼은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들에게 맞춰졌습니다.

음악과 미술수업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2외국어 등 수능시험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들은 자율학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대학입시는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적어도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치표 바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형과 누나의 책장에서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로 꼽히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책들을 들추어 보기는 했지만, 바로 저와 제 친구들의 문제였음에도 한번도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3. 학생신분 운운하기에 앞서

하지만, "아수나로"는 학생으로서 자신들이 당면한 가장 직접적인 문제인 "교육"에 대해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학생의 신분적 한계를 깨고, 어린 나이에도 각종 불이익을 무릅쓰고 발언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저는 참으로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학생신분에 적합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으실겁니다. 물론 몇 몇 보수언론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구요...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과연 학생다운 것은 무엇이냐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학생인지? 가르치는대로 배우고, 때리는대로 맞고,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학생다운 것인지?

학생은 이제 곧 대한민국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주체가 될 집단입니다.

그들에게는 열정과 순수성이 있으며, 적어도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그들만큼 민감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당연히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학생신분을 운운하며 그들의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을 묵살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똑똑하고,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4. 그들 때문에 부끄럽고, 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 때, 저는 대한민국의 성인으로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외쳐대던 어른들은 사태가 이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이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을까?

그리고 오늘 아침 아수나로 관련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유리시키고 배격했길래 학생들이 스스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일까?

성인으로서 그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연대하지 못한 것이, 그리고 그렇게 험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거의 달라진 것 없는 교육과정을 그들에게 물려준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고 그들 스스로 틀을 깨고 달려나가는 모습에서 너무나도 큰 감동과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후배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Posted by 제라드76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우선 진보신당의 당원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힙니다.

1. 한명숙의 석패와 노회찬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저로서도 정말 아쉽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항상 뒤지던 한명숙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하면서, 노회찬의 책임론을 이야기하는 네티즌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보신당 지지율은 창당 이후 지금까지 항상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외연이 왜 확장되지 못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어쨋든 진보신당 및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아, MB정부 심판을 위해 범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국민들의 요청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 심상정의 사퇴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완주를 약속했던 심상정 의원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선거를 며칠 앞두고 전격 사퇴했습니다. 심상정의 사퇴를 바라보는 마음은 참 착잡했습니다.

MB심판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유시민의 지지를 호소하던 심상정의 눈물은 한방울, 한방울이 심장을 파고드는 것 같더군요.

선거이후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던 일부 진보신당 당원들도 있었습니다.

3. 두개의 선택 모두 의미가 있다

MB심판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모을 것이냐? 아니면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완주할 것이냐?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MB 정부 출범이후로 계속되어온 민주주의 후퇴, 환경파괴, 인권유린 등을 살펴봤을때 분명 이번 지방선거는 MB와 한나라당을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따라서,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하여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MB에 반대하는 것 말고 민주당과 진보신당이 공유할만한 가치와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짚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정치집단으로서의 정당은 그 고유의 목적과 철학, 그리고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서울시장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은 진보신당의 입지를 넓히고 정책의 비교를 통해 당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너무나도 중요한 기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주를 통하여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지지층을 규합하여 당의 인지도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훌륭한 선택인 것입니다.

4. 우리 스스로 투표의 의미를 폄하하지 말자

패배는 항상 슬프고, 가슴아픕니다. 특히 MB정부에서의 패배는 훨씬 가슴아픕니다. 그리고, 지금은 패배 직후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패배의 책임을 묻고자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회찬의 선택은 옳았으며, 그의 완주는 심상정의 사퇴만큼이나 용기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신당과 노회찬이 꿈꾸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민없이 오로지 투표를 MB심판내지 승리라는 관점으로만 평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투표와 선거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선거일에만 국민에게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회찬의 노력과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서울시장의 선거 패배로 인해 부당하게 평가절하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용기와 철학에 박수를 보냅니다.

위 주제와 관련하여 민노씨의 글을 추천합니다.

http://minoci.net/1112 "노회찬 집단 이지메? 노회찬에게 고마워 해야죠"
Posted by 제라드76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경기도지사 출마를 두고 민주당의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2002년 대선당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정몽준을 선택했다던 김민석 최고의원은 "유시민이 대구에서 출마하는 것이 노무현 정신"이라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를 했다고 하죠.

오늘 저는 "정치인의 약속과 전략적 승리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한 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대선기간 내내 색깔논쟁으로 김대중을 괴롭혔던 조선일보 및 보수언론들은 떠나가는 김대중에게 언제 그랬냐는듯이 찬사와 격려를 보내죠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정계로 복귀합니다.

그가 정계로 복귀할 때, 이번처럼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상대로 결국 승리하고 국민의 정부를 출범시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측근 및 친인척 비리로 잡음이 끊일 날이 없기는 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대한민국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업적을 남깁니다.

그가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지 않고,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요?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좀 더 보호받고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요?

그럼, 다시 메인 주제로 넘어와 보겠습니다.

유시민이 대구에서 출마하며 "대구에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했는지 정확한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시민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저는 유시민의 경기도지사 출마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약속을 번복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그가 경기도지사로 출마하는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후 날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점점 강력해지는 재벌, 점점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를 고려했을때, 유시민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막는일에 공헌할 수 있다면, 저는 당연히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유시민을 비난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는 김용철을 배신자로 낙인찍던 삼성이 떠오르더군요.

김용철이 배신자인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김용철의 양심선언을 통해 드러난 삼성의 부패를 감안하면, 김용철이 배신자인지 여부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이 경기도지사로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을 수 있다면, 유시민의 약속 번복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합니다.

유시민이 18대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했을 때, 저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인사하는 유시민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 정치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유시민도 아직 지역감정의 벽이 높고,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시밭길을 자청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번 가시밭길을 가기로 했으니 죽을 때까지 가시밭길로 걸어가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요?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현상황에서도 왜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제라드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