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중심주의비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29 미네르바 사건과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 (2)
  2. 2010.11.04 위키피디아는 왜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했을까? (32)
1. 들어가며

장하준 교수님께서 얼마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에게는 서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 가능하다."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중략) 식품 공장, 정육점, 식당 등의 위생기준이 어때야 한다는 것은 전염병 학자가 아니어도 모두 아는 사실이 아닌가. 경제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저는 경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대학시절에도 남들 다 듣는 경제학 개론 수업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경제학 지식의 부족은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항상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글을 쓰고, 정부를 비판하겠어..."

하지만, 장하준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왜이리 도입이 장황한지 아마 의아하실겁니다.

법학은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예전부터 아주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각종 법률용어가 매우 생소하고, 판결문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적 판단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관념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도 핵심적인 개념들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며, 법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도출된 일종의 약속이기 때문에 상식적인 차원의 비판이 오히려 더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 교수님의 저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제가 쓴 글도 일반인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 포스팅을 올립니다. 

2. 미네르바 사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박대성씨는 2008. 7. 30.경 인터넷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을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2008. 12. 29.에는 아고라에 "정부가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였습니다.

검찰은 박씨의 글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환율정책 수행을 방해하고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등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이유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근거하여 박씨를 기소하였습니다.

제47조(벌칙) ①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박씨는 위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3. 위헌법률심판

헌법재판소는 2010. 12. 28. 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특정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흔히 통칭하여 부르는 "법령"에는 헌법,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법령들은 동일한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법령 중 헌법이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설사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이라고 할지라도 상위 법령인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안됩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이나 국민이 특정 법률조항의 위헌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신청하면 이에 대해 종국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몇가지 기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 명확성의 원칙

헌법재판소는 우선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보았습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률에서 금지된 행위인 '범죄'와 그에 대한 제재인 '형'을 누구나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만약 형법규정이 명확하지 못하다면 해석하는 법관마다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나쁜짓을 한 자는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률조항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죠.

법을 준수해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쁜짓"이라는 요건이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행위가 나쁜짓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나쁜짓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동성연애, 촛불집회 등 판단하는 사람마다 각 행위가 "나쁘짓"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법률조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위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요약문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어떠한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판단주체가 법전문가라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현재의 다원적이고 가치상대적인 사회구조 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상황이 문제되었을 때에 문제되는 공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바,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익간 형량의 결과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에 위반된다."(헌법재판소 결정 요약문 중)

헌법재판소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공익을 해한다고 할때의 "공익"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추상적입니다.


다양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공익"이라는 개념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으며 판사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구성원 입장에서도 특정한 행위를 할 때, 나의 행위가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지 여부에 대해서 쉽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 조항이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5. 과잉금지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싶으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만 제한할 수 있고(제한의 목적), 제한하는 경우에도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해야 하며(제한의 방법),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해야 합니다(제한의 정도).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경우"를 학문적으로 구체화 한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입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정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며, 만약 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원칙입니다.

목적의 정당성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위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의 목적은 "허위 사실 유포 등에 의한 국가혼란의 방지"일 것이므로 목적 자체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단의 적정성이란 기본권 제한의 수단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허위 사실 유포 등에 의한 국가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 한다면 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므로 수단의 적정성 요건도 충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침해의 최소성이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이 존재할 경우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가장 낮은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자는 오른손을 절단한다"는 법률조항은 수단의 적정성은 충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른손이 절단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국민들이 재산권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법률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징역이나 금고, 벌금과 같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절도죄를 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익의 균형성이란 제한되는 기본권에 비하여 기본권 제한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이 보다 더 커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위에서 든 예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재산권의 보호라는 목적이 평생동안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절도범의 불이익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위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이번 판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을 당해 사건에서와 같이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통신에 적용하는 것은, ‘공익’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된다. 허위사실의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올바른 정보획득이 침해된다거나 국가질서의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허위의 통신 자체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해악의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하여 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국가의 일률적이고 후견적인 개입은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은,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 주체로 하여금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표현행위를 억제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은바, 제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표현이 억제된다면, 표현의 자유의 기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헌법재판소 보충의견 중)

헌법재판소에서는 본 조항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허위사실을 표현한 모든 경우를 처벌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불법적인 폭력을 조장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통신"과 같이 범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정하여 규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범위가 현저히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6. 마치며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과 관련하여 법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이 판결의 취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글을 썼는데,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드는군요.

이번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에도 아직 미래가 있다는 조그마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기본권 제한에 대해 한 번쯤 의심하고, 이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Posted by 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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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_PHEOM 2010.12.29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참 법은 어렵네요^^;; 하나를 이해했다 싶으면 또다른 벽이 있고...ㅎㅎ 마지막 문장이 참 인상깊게 와닿습니다.

    • 제라드76 2010.12.30 0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되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가 보네요. 다음에는 좀더 이해하기 쉽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은 약간 수그러든 것 같지만, 한 때 집단지성의 성공케이스로 위키피디아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적절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획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위키피디아가 기대만큼 많이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2010. 10. 28.을 기준으로 영문 위키피디아의 총 항목은 3,453,444개인데 반해 한글 위키피디아의 총 항목은 146,267개에 불과합니다.

단지, 항목수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항목의 경우에도 질과 양에서 한글위키피디아는 영문 위키피디아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문 위키피디아는 영어를 쓰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생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글 위키피디아와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차이가 지나치게 현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창시자인 지미 웨일즈는 한국 방문시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지식in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요.

오늘은 위키피디아가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지식in과의 비교를 통해서 한 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 사적 채널과 공적 채널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사항들을 쉽게 찾아보기 위해서는 백과사전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30대 이상인 분들이라면 어린시절 숙제를 하기위해 백과사전을 참조하셨던 기억을 가지고 계실겁니다.

당시에는 백과사전의 종류도 별로 많지 않아서, 학생들의 숙제내용도 대부분 비슷했었습니다.

백과사전은 대부분 전문가들에 의하여 작성되었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공식적인 컨텐츠라는 믿음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런 인식은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백과사전처럼 공신력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줍니다.

반면에 지식in 서비스는 어떤가요?

대부분의 경우 친구의 고민을 받아주듯 쉽게 그리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답변이 작성됩니다.

다시말해 심리적인 부담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위키피디아에 참여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지식in에는 쉽게 답을 올리고, 이를 통해 컨텐츠가 용이하게 확대될 수 있습니다.

2. 창작의 습관

우리나라 사람들이 컨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큰 장애물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은 제도권 교육의 영향으로 주로 듣고, 읽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쓰고, 말하고, 토론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훈련받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가뜩이나 고단한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훈련받아본 적 없는 일을 시작한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창작이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제약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지식in이나 위키피디아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in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형식적 대화에 가깝다는 점, 다시 말해, 수업시간에 날아온 친구의 쪽지에 대한 회답같은 성격이 강하고, 이는 자신의 생각을 정제하여 표현해야 하는 위키피디아식 창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3. 전문가 중심주의

한국사회는 대학서열화로 인해 학력주의가 매우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이미 경험으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격증이든, 박사학위든, 유학경험이든 사회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된 무언가가 없다면 한국에서 여론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의견을 주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경제는 경제 전문가가, 정치는 정치 평론가가 담론을 만들어내며, 평범함 사람들은 공식적인 채널에서는 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합니다.

위키피디아의 실패원인으로 토론문화의 부재를 언급하시는 분이 많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식채널을 통한 사회적 담론의 형성은 지적으로 뛰어난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라는 강박관념이 크게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4. 위키피디아는 중요한 시험대

저는 대한민국에서 위키피디아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유는 위키피디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통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다른 구성원들과 협업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은 다른 영역에서도 대화와 타협, 협업과 공유의 문화를 불러일으키고 다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한국판 위키피디아가 전문가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한국에서도 모범적인 집단지성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병찬 변호사(제라드76)

Posted by 제라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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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 2010.11.08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서도 위키백과가 많이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 제라드76 2010.11.09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의 말미에서도 밝힌 것처럼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서비스 플랫폼이 성공한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쪼록 한글 위키피디아가 활성화되어 그 경험과 성취감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길 기대해봅니다.

  2. silent man 2010.11.11 0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쉬운 노릇이긴 한데, 저만 해도 그냥 영어 위키 찾고 말지 귀찮음에 참여할 생각을 안 하고 있네요.

    1번과 관련해선 엔하위키와도 비교를 할 수 있겠네요. 인터넷 이용자들이 훨씬 친숙하고 재미를 느낄만한 주제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델인 엔하위키는 나름 잘 굴러가고 있으니. 여담이지만 기계적/주입식 교육에 질린 탓에 사람들이 졸업하고선 글만 봐도 질색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2번 문제는 특히 글로 된 컨텐츠를 만드는 일을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글도 분명 'UCC'인데, 동영상이나 찍고 만들어야 저게 'UCC'인가 보다 하는 경향도 있죠.

    • 제라드76 2010.11.12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리있는 지적이십니다.

      사람들이 딱딱한 내용의 글을 쓰기 싫어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길지 않은 여가시간은 되도록 가볍고, 즐겁게 보내려는 사람들의 성향도 위키피디아 한글판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겠죠.

  3. 로아 2010.11.16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소셜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지면서 상호작용과 협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위키피디아를 생각해보게 되네요..참여와 공유..참 멋진 activity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문화가 아직 한국사회에는 말씀하셨듯 공적채널에까지 적용되기가 쉽지 않은 듯 하네요..그래도 미디어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라드76 2010.11.16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적채널에서 사용되는 활기와 에너지, 참여욕구를 어떻게 공적채널로 전이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4. 위키백과광 2010.12.16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키백과의 문제는 바로 사용자입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키는 본인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미디어인데, 본인이 참여하지 않고, 실패했다고만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요. 한국어 위키백과의 실질 활동자는 대략 1,000명으로 60만 항목을 가진 일본의 11,000의 1/10에 불과합니다. 33만 항목을 가진 중국도 5400명 정도가 실질적으로 활동합니다. 중국이야 아직 인터넷이 일반화되지 못했으니 ... 그렇다쳐도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그리고 인프라 대비 너무 적은 인원이 참가를 합니다. 솔직히 그 원인을 교육 수준에서 밖기 찾기 힘들겠군요.

    • 제라드76 2010.12.17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어린 지적 감사합니다.

      다만, 위키피디아의 성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중의 참여를 독려하기 전에 실패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 포스팅은 위키피디아의 실패원인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구요.

      위키백과광님께서는 교육수준의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OECD 국가 중에서도 1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교육수준이 아니라 교육방식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말해, 창작과 토론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5. 2010.12.30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서의 위키피디아의 발전은 한국사회 전체가 산업사회중심에서 정보사회로(문화적으로)바뀌어야만 일어날수 있는것 같아요...... 각사회의 문화적 정보화의 정도는 위키피디아를 통해서 알수있다고 생각해요,,,~

    • 제라드76 2010.12.30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입니다. 위키피디아는 개방, 참여, 공유라는 문화적 정보화의 핵심적 가치들이 구현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진보가 뒷받침되어야 위키피디아 같은 서비스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공감합니다.... 2011.01.07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완전 공감하는 내용.......

  6. mynotepad 2011.01.05 0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순환인거 같아요. 한글 위키피디아의 부실한 컨텐츠에 실망해서 사용자가 적어지니, 한글 위키피디아의 컨텐츠 재생산도 더디어지는...
    저도 위키피디아를 볼 떄는 읽는 게 좀 느리더라도 영문 위키피디아부터 찾게 되네요.
    이런 걸 보면 과연 대한민국이 IT 강국, 인터넷 강국이 맞는지 정말 의문이 듭니다.

    ps ) 한국 네티즌이 위키 문화에 익숙치 않다는 것도 한글 위키피디아 비활성화의 중요한 이유가 되겠네요.

    • 제라드76 2011.01.05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키피디아의 악순환은 사실 참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주로 초고속인터넷 보급율, 스마트폰 판매대수 등 주로 하드웨어적인 측면으로 국가의 IT지수를 평가하지만, 사실 "이와같은 정보통신의 발달이 어떻게 민주적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위키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위키피디아 발전을 저해한다는 부분도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충분히 일리있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7. .....덕분에 2011.01.07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식인 덕분에 머리에 개념안차있는 초등학생들이 나돌아다니고 있죠.
    광고도 보이고.
    근데 위키피디아는... 광고 제로... 100%기부금 운영...
    확실히 달라보이는 두 온라인 백과사전들..
    저는 위키피디아를 추천합니다..

    • 그리고... 2011.01.07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 주인분이...
      한국이 OECD국가중 대학진입률 1순위인데....
      고작 교육에서는...창작성제로..
      진짜동감합니다....
      미국고등학교하고...한국고등학교하고..달라요...
      미국고등학교는 달달 안외우라하고,
      엄청자세히가르쳐주는반면..
      한국은 정반대임...
      그리고 부모들도 문제임...
      한국부모들은....닥치고 공부나하라그럼...
      미국? 완전달름... 그냥 내버려둠..
      스트레스때문에 미치겟는데.
      정작 부모들은... 학생사정 이해안함.

      나는....미국에 태어낫기땜에
      시민권가지고잇어서 미국에올수잇엇지...
      나는 쫌 행복한 고등학생인가봄...

    • 제라드76 2011.01.08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분이신가 보군요.
      스펙경쟁이 강화됨에 따라 학교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질주가 하루라도 빨리 종결되어야 할텐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현실이 암담하네요.

  8. 나그네 2011.03.10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에게 여유가 없다는게 주된 이유겠죠

    • 제라드76 2011.03.11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맞습니다.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다보니, 좀 더 편하고, 쉽게 여가를 보내려는 욕구가 강한 것도 위키피디아의 발전을 막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입니다.

  9. 파뿌리 2011.05.06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단지성에대한 주제로 레포트를 쓰던도중에 들어와보네요ㅎㅎ
    저는 SNS서비스가 위키의 발전을 막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NS는 복잡한것을 싫어하는 우리국민성과 잘 버무러져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믿을만한 주변사람들에게 알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남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딱딱할 수 있는 백과사전형식의 위키보다는 이러한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게 그 이유라고 생각되네요.

    위키가 발전하면 좋겠지만 댓글에서처럼 활발한 참여자도 없고 궁금한 사항의 대부분을 위키로 해결하는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다른방법으로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기때문에 당분간 위키의 어려움은 계속 되리라 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신뢰할 수 있고 명문화 되어있는 이러한 플랫폼에 사람들도 흥미를 가질거라고 생각되네요.
    인지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위키의 발전속도를 결정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10. 베아트리체 2011.05.2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위의 글에 공감합니다.
    사견 몇마디 올리자면
    위키피디아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민성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결과적으로 위키피디아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위키피디아가 여러 면에서 좋은 것은 사실이나
    위키피디아의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권장하고 지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께서 충분히 근거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위키피디아의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객관적으로 쓰신 점이 맘에 듭니다. 다만 개인적 바람을 내비친 정도죠 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11. 2011.07.09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2011.08.3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재석이 2011.10.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는말씀이십니다. 저는 조금 쌩뚱맞은 지적을 하고싶은데요. 우리나라 교육방식이문제인것 같습니다. 전공학점만 따게하니깐 문장력이없는것같네요. 어찌된판인지 번역서보다 원서가 더 이해가 잘되는 지경에 왔는지... 위키도 전 영문위키를 자주씁니다. 21년동안 한국에만 살았던 대학생입니다. 이런건 참 아쉽네요.

  14. 최창규 2012.02.13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하고 있는 일에 귀한 경험에 의한 철학을 을 쉽게 얻어 가기에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15. 문제가많은것같네요 2012.03.11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키피디아가 우리나라에 인기가 없었던 이유중 하나가 관리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관리자들이 전부 나이가 어린데다가 우리나라 국민성과 얼버무려져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16. 2012.10.04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제라드76 2012.10.23 1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리있는 지적이십니다.
      스스로 전문 컨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재원과 시스템이 마련되어야겠죠^^